서울여대인 - 정윤경 동문(저널 17)과의 인터뷰
  • 작성일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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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사회부 기자 정윤경 동문(저널 17)과의 인터뷰


슈니 여러분, 안녕하세요!

다들 중간고사 준비는 잘 하고 계시나요? :)

오늘은 시사저널에서 사회부 기자로 활동하고 계신 

정윤경 동문(저널17)과의 인터뷰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기자로서의 삶은 어떠한지 동문님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러 가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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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동문님, 반갑습니다. 간단한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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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안녕하세요. 저는 시사저널 사회2팀 기자 정윤경입니다. 지금은 그 의료 대란 때문에 사회 탐사팀이랑 협업을 하고 있어요. 저는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저널리즘 전공했습니다. 





Q. 현재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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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료센터 앞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문님의 모습


A. 현재는 의료대란을 취재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그중 하나로 <응급실 48시>라는 르포기사를 썼습니다. 저는 근무지가 정해지지 않았어요. 그날그날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직장인처럼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삶이 아니라 그날그날 난리가 난 곳을 가게 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최근 출근길에 서울 시내버스가 멈췄었는데요, 그렇다면 제 출근지는 7시 30분쯤의 버스정류장이 되는 것이랍니다. 




Q. 서울여대 재학 당시, 교내 학보사와 언론영상학부 소학회 ‘매력토론’ 활동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해당 경험들은 동문님께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A. 학보사에서는 사회문화부 부장으로 활동했었고 소학회에서는 학회장을 했었는데요. 수업 ot에서 처음 만났던 동기 손에 이끌려 학보사를 가게 됐었어요. 근데 그 길로 이제 기자가 된 거죠. 그때 학보사에서 만났던 선배들이 다 기자가 되었어요. 학보사 시절 인연이 현직에서 소중한 인연이 됐죠. 얼마 전에는 다들 기자가 돼서 학교를 찾아갔는데요, 모두 각자 명함을 들고 교수님 방에 꽂아놓기도 했어요. 학보사의 인연이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고, 현직에서도 서로 도움을 많이 주고받는 것 같아요. 소학회 ‘매력토론’은 제가 활동 당시에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에 나갔었는데요. 이때가 정말 큰 경험이 되었어요. ‘매력토론’ 활동을 하며 논리적으로 말하는 연습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기자가 되면 취재원과 대화도 해야 하고, 기사를 설명해야 하는 일도 많으니 말하는 연습을 한 매력토론 활동이 지금 많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Q. 언론영상학부 졸업생으로서 학부 재학시절, 가장 기억에 남거나 도움이 되었던 수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두 가지를 뽑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는 홍성욱 교수님의 <기사작성실무>수업이었어요. 이 수업은 토요일 오전 9시에 진행되었었는데요. (웃음) 저에게는 정말 인생수업이었어요. 제가 왜 기자가 되고 싶은지 진지하게 처음 생각해 볼 수 있던 수업이었어요. 이전까지는 막연히 기자가 돼야지만 생각했었는데 수업을 통해 내가 왜 기자가 되고 싶었는지 논리적으로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논리적인 고민을 글로 묻어나게끔 만들어 주셨답니다. 교수님께서는 그때 인연으로 자기소개서도 첨삭해 주셨고, 저의 합격과 불합격을 정말 바로 옆에서 지켜봐 주셨답니다. 정제되지 않았던 저의 글을 많이 다듬어 주셔서 제가 정말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그때 퇴고의 중요성도 많이 배웠죠. 


두 번째 수업은 김미라 교수님의 <미디어시사글쓰기>예요. 이 수업도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제가 쓴 글을 언론사에 보내서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첫 경험을 했거든요. 기사를 써서 올린 다음, 포털에서 내 기사를 보는 경험은 정말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에요. 그날의 분위기와 냄새가 다 기억난답니다. 그래서 그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Q. 기자를 지망하는 후배들이 하면 좋을 것 같은 활동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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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대란을 취재하고 계신 동문님


A. 사실 저는 기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만 대학시절 4년을 보냈어요. 불금은 학보사 마감에 바쳤었고, 휴학은 인턴 생활을 하는 데 바쳤었죠. 그런데 꼭 저처럼 하라고 권유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기자가 되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적어도 내 이름으로 기사를 써서 꼭 반응을 봤으면 좋겠어요. 내 기사를 써서 반응을 보고 또 고쳐도 보는 경험을 열 번 정도는 꼭 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Q. 학부생 시절 뉴스통신진흥회에서 열린 제4회 탐사·심층·르포 취재물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셨는데요, 해당 공모전이 동문님의 현재 직무에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A. 수상을 한 취재 기사는 <노후 아파트는 정전과의 전쟁 중>이라는 기사였는데요, 이 공모전 경험이 저를 탐사팀 기자로 이끈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때는 학생 신분이었음에도 하나의 아이템에 꽂혀서 3개월을 매달렸었어요. 정전이 났던 강남 아파트들 다 돌아다녔었죠. 이 경험을 통해 ‘끈기, 거절당해도 민망해하지 않기, 아무한테나 말 걸기.’ 이렇게 세 가지를 배운 것 같아요. 기자들은 아무한테나 말을 걸 수 있어야 돼요. 거절을 당해도 절대 민망해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주눅 들지 않는 것이 필요해요. 그리고 긴 호흡으로 추적해나가는 태도도 필요하죠. 그래서 이 세 가지를 공모전을 통해 다 배웠고 지금은 제 무기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죠.




Q. 언론사 입사 시험을 준비하실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A. 대학 4년을 기자가 되기 위해 바쳐서 살았으니, 졸업만 하면 바로 합격하고 기자가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당연히 통과할 줄 알았던 필기에서 바로 떨어지고 정말 충격 받았어요. 그렇게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바로 본가로 내려가서 동네를 걸으면서 펑펑 울었어요. 한 1년을 슬럼프로 살았던 것 같아요. 한동안은 자소서도 안 내고 면접도 안 보고 하루 종일 안 먹고 그냥 눈물만 흘린 적도 있었어요. 그때 정말 힘들었죠. 그런데 사실 가장 힘들었던 건 아무도 나를 뭐라고 하지 않는데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것이 가장 저를 힘들게 했었어요. 노력하면 당연히 보상이 한 번에 따라오는 줄 알았는데 뭔가의 노력이 더 필요한 건가 싶기도 해서 그때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고, 내가 어떤 점이 부족한지 저를 좀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어요.




Q. 기자 준비를 하시며 힘들거나 지칠때는 어떤 방법으로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슬럼프가 오는 동안 저의 부족한 면들을 채우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머리가 복잡할 땐 몸을 움직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루틴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7시에 일어나서 최소한 11시에 잠든다는 생각으로 공부하고 운동하고 밥도 잘 챙겨 먹으면서 억지로 저를 몰아넣었어요. 그러면 바쁘니까 잡생각은 잘 나지 않더라고요.  이때 경험이 지금 다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이 경험들이 저를 더 강하게 만든 것 같고 제 인생에 슬럼프가 다시 찾아왔을 때 잘 이겨낼 수 있는 근육을 만들어준 느낌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가장 힘이 됐어요. 가족들의 지지와 친구들의 응원으로 많이 버텼던 것 같아요. 그래서 슬럼프가 온다면, 그냥 주변인과 대화하고 자신의 스트레스를 푸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Q. 기자가 되신 후, 동문님께서 취재하신 가장 기억에 남으시는 기사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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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찾은 환자 및 보호자와 인터뷰를 하는 동문님의 모습


A. 앞서 언급했던 <응급실 48시>가 아직 기억에 가장 많이 남아요. 2박 3일 동안 서울대병원 응급실 앞에서 노숙을 하면서 의료 대란 상황을 접했죠. 이때 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새벽 3~4시쯤 보호자들이 웅성웅성하는 거예요. 무슨 일인가 했더니, 병상이 없어서 응급실에 들어가지 못한 환자·보호자들이 다른 곳을 급하게 알아보고 계시더라고요. 기사로만 접했던 의료대란을 현장에서 보니까 생생함이 좀 남달랐던 것 같아요. 그때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그대로 기록하려고 했던 것 같고, 르포 기사를 어떻게 쓰면 좋을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됐던 것 같아요. 




Q. ‘기자하길 잘했다.’하는 순간이 있으셨나요? 동문님이 기자로서 경험하셨던 가장 보람찬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A. 눈이 정말 많이 오던 날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부모님들이 국회를 돌며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는 오체투지를 하셨었어요. 바닥이 정말 흰 눈으로 완전히 덮고 꽝꽝 얼었던 상태였는데 그날 오체투지를 하셨었죠. 당시에 저는 수습기자여서 현장을 지켜보면서 유가족들의 얘기를 듣고 기사를 썼어요. 오체투지가 끝나고 기사를 다 작성해서 제가 희생자 아버님 한 분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었는데, 그때 저에게 ‘고맙습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때 정말 보람을 느꼈던 것 같아요. 




Q. 동문님이 생각하시는 기자란 무엇이며, 앞으로의 어떤 기자가 되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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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대란을 취재하고 있는 동문님의 모습


A. 세상에는 되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잖아요. 그런데 대부분의 국민은 자기 일이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다 가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물어볼 수 없죠. 따라서 기자란 사람들을 대신해서 질문하고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을 기사로 보여주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저는 사회부 기자이기도 하니 독자들의 발이 되어주고 싶어요. 사람들을 대신해서 뛰어다니면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주고 싶어요. 이게 왜 우리에게 중요한 일인 건지, 그 사람들은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지 대신 찾아가서 묻고 답하는 것들을 해주는 기자가 되고 싶어요. 제가 현재 만으로 25살인데요, 앞으로 65살이 되어도 현장을 뛰어다닐 수 있는, 나이가 차도 현장을 다닐 수 있는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서울여대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A.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말을 해주고 싶어요. 어느 회사, 어느 직종에서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서울여대니까 잘할 수 있어’ 하는 생각을 많이 하셨으면 좋겠어요. 특히, 언론영상학부 후배들에게는 선배들이 기자 직무뿐만 아니라 방방곡곡에서 현장 일을 잘 하고 계시고 있으니 선배들을 믿고 자신감을 키우시면 좋겠어요. 그래서 본인도 그런 선배가 되어 후배들을 위해 길을 잘 닦아놔야겠다는 생각을 하시길 바라요. 우리는 ‘서울여대’니까 비교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세요! :)


 


 


동문님과의 인터뷰는 여기까지입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동문님은 기자라는 직업을 정말 사랑하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 사회의 발이 되어줄 정윤경 동문님의 빛나는 미래를 응원하겠습니다!


‘우리는 서울여대니까’

자랑스러운 슈니 여러분,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

그럼, 우리는 다음 포스팅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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