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과 소명, 기독교 대학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이 시대의 기독교 대학은 신앙의 울타리 안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는 시대적 소명에 충분히 응답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복음은 교회 안에서만 살아 숨 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영역을 향해 가야 하고, 기독교 대학은 그 통로가 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로 대두되는 AI, 기후위기, 생명윤리, 사회 양극화와 같은 문제들도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책임 있는 지성으로 응답해야 한다. 이러한 시대적 응답은 교육과정에 포함된 몇 개의 사회참여 프로그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보다 본질적인 차원에서 대학이 사회와 이웃을 향해 열려 있는가에 대한 성찰과 응답이 필요하다. 많은 대학들이 생존 전략을 중심으로 미래를 설계하고 있지만 기독교 대학은 자기 보존이나 현상 유지를 넘어 사회적 책임감을 감당하는 기관으로서 공공성의 본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 대학의 공공성의 실현은 세 가지 영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대학의 공공성은 지역사회와의 동행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 대학이 위치한 지역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신 복음의 현장이다. 지역의 돌봄 사각지대, 청소년과 노인, 이주민 문제, 문화 격차 등을 캠퍼스 밖의 문제로 간주하지 않아야 한다. 서울여대가 지역과 함께 기획하고 실천하는 지역문제 해결형 교육과정은 공공성 실천의 유의미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서울여대는 인근 복지기관을 대상으로 매년 서비스러닝 봉사단 활동을 운영하고 있다.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교육봉사를 진행하며 가장 큰 감동을 받은 이들은 바로 학생들이었다. "우리가 도움을 준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감동과 감사가 우리 안에서 살아났다"는 한 학생의 고백은 복음이 현장 속에서 살아난다는 사실을 다시 깨우쳐준다.
둘째, 대학의 공공성은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신앙고백이 대학의 제도와 정책 전반에 반영될 때 드러난다.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본다면, 누구도 소외되거나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등록금, 장학금, 돌봄, 장애인 접근성, 외국인 유학생 지원 등 대학의 제도도 성경적 정의와 사랑의 정신 위에 설계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예컨대, 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른 외국인 유학생이 이방인처럼 낯선 캠퍼스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때,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네고, 수업 안내부터 생활 정보까지 세심히 도와주는 또래 학생의 섬김은 단순한 친절을 넘어 하나님의 형상이 존중받는 공동체의 모습이다. 공동체가 낯선 이들을 외롭게 두지 않고 먼저 손 내미는 그 순간, 캠퍼스에는 복음의 환대가 살아 숨 쉬게 된다. 대학이 이러한 문화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나눔과 환대의 삶을 실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면 약한 자를 먼저 살피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이 살아있는 캠퍼스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리더십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성찰해야 한다. 기독교 대학이 양성해야 할 인재는 지적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아픔에 응답할 수 있는 영적 감수성과 사회적 책임감을 가진 인재여야 한다. 그동안 많은 대학이 리더십을 성공과 사회적 영향력의 크기로 평가해 왔다면 기독교 대학은 이를 소명과 섬김, 책임과 헌신의 가치로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 복음이 말하는 리더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공동체를 먼저 세우고, 가진 권한을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러한 리더는 학문과 신앙, 이성과 영성, 전문성과 도덕성을 아우르며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고, 사회가 신뢰할 수 있는 공공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기독교 대학은 그 존재 자체로 하나의 메시지여야 한다. 하나님 보시기에 바르게 존재하고 있는가는 기독교 대학이 걸어갈 방향을 결정할 때마다 스스로 묻고 점검해야 할 질문이다. 복음의 이름을 내세운 공동체라면, 그 이름은 교육, 연구, 봉사의 현장에서 실천으로 드러나야 하고 하나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어야 한다. 세상의 가치 질서를 목적없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섬기고 먼저 손 내미는 삶의 질서를 캠퍼스 안에서 실천해 내는 것이 기독교 대학이 세상에 전할 수 있는 가장 깊고 본질적인 메시지가 될 것이다.